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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덕의 생애
운영자 20-09-20 21:20 374 hit

1739년 제주도에서 출생

가난한 집안에서 삼남매 중 외딸로 태어난 김 만덕

1750, 부모를 모두 잃고 기녀의 집에 의탁하게 되어

기녀생활을 시작한다.

 

의도치 않게 천민의 신분으로 기생의 길을 가게된 김만덕은

십대시절을 보낸다.

 

비록 기생이었지만,

김만덕의 가슴엔 야심찬 빛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관아에 찾아가

자신의 이름을 기적에서 제하고 본래의 양인 신분을 회복 해 달라고

끊임없이 요청한다.

1762, 집요한 노력 끝에 24살에 기녀의 신분에서 벗어나 양인의 신분을 되찾는다.

 

김만덕의 상인들의 숙소이자 거래소인 물상객주를 세운다.

김만덕은 포구의 상업적 중요성을 미리 읽고 건입포구에서

물산객주를 차려 장사를 시작한다.

김만덕은 자신의 객주를 찾는 상인들을 지켜보며 장사의 기술을 빠르게 습득했다.

 

그녀는 전복과 미역같은 제주지역 특산물을 육지에 내다 팔고

쌀이나 무명 같은 상품과 옷감, 장신구, 화장품 같은 완제품등을 제주로 가져온다.

 

40대에 이른 김만덕은 제주도의 최고 부자 중 한명이 되었으며

50대 때에는 육지의 최고재산가들 만큼의 부를 축적했다.

 

1794년대 초반, 흉작과 태풍으로 제주도의 극심한 기근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제주도 3분의1이 목숨을 잃었다.

이를 그저 두고만 볼수없었던 김만덕은 자신의 자산, 90%를 기부해 구휼미 지원등의 구호활동에 사용했다.

당시 김만덕의 순 자산은 현재기준으로 약 7백억원, 미화 6천만 달러에 이르는 수준이다.

 

정조는 김만덕에게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김만덕의 소원은 소박했다. 한양의 궁궐 방문과 금강산구경이었다.

당시 제주여인들은 육지여행은 금지된 출국금지령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조는 그 시대여성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벼슬 의녀반수를 하사하여

김만덕의 소원인 궁을 방문하게 하고 금강산 관광을 허락한다.

 

1797. 제주로 돌아온 김만덕은 고향에 머물다 1812년에 사망한다.

 

김만덕 그녀는 순응을 거부하고, 담대하게 새로운 운명을 선택해 개척한 여인이자 예리한 비즈니스 감각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거상이었다.

그녀가 진정 위대한 이유는, 어려운 사람을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기꺼이 나누었기 때문이다.